야간진료가 있는 날은 병원 문을 나와도 마음이 바로 퇴근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분의 표정, 보호자의 질문, 설명 끝에 남은 침묵 같은 것들이 차 안에서도 한동안 따라온다. 오늘은 특히 감기 기운으로 축 처진 아이를 안고 왔던 보호자가 오래 남았다. 진료실 안에서는 차분히 설명했지만, 문이 닫힌 뒤에야 그 피곤한 얼굴이 마음에 다시 걸렸다. 아마 나도 비슷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면 집은 이미 밤의 온도로 가라앉아 있다. 식탁 위에는 덮어둔 반찬 그릇이 있고, 거실 한쪽에는 아이가 벗어 둔 양말이 뒤집혀 있다. 방문을 살짝 열어 보면 작은 몸이 이불을 반쯤 차고 잠들어 있다. 자는 얼굴은 늘 낮보다 더 여리고 작아 보여서, 그 곁에 잠깐 서 있기만 해도 하루 종일 굳어 있던 마음이 천천히 풀어진다.
오늘도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한 엄마였다는 미안함이 남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불안을 조금 덜어 준 시간이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같이 있다. 엄마로서는 비어 있는 시간이 있고, 의사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늘 두 자리를 다 잘 채울 수는 없지만,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면 다시 내일을 준비할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