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예상보다 무거운 말을 전해야 하는 날이 있다. 진료실에서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과 안정된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어떤 날은 마음 안쪽이 생각보다 크게 흔들린다. 오늘이 그랬다. 환자분과 보호자의 표정을 보며 설명을 이어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확하게 말하고 충분히 듣는 일뿐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의사는 침착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도 그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침착함이 무감각함을 뜻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걱정 앞에서 같이 마음이 내려앉고, 한숨 섞인 표정 앞에서 내 호흡도 잠깐 느려진다. 다만 일하는 동안은 그 감정을 정리한 채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이다.
집에 와서는 평소처럼 손을 씻고, 아이 저녁을 챙기고, 숙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샤워기 물소리 앞에서 마음이 무너졌다. 울고 나니 오히려 숨이 조금 편해졌다. 모든 날을 잘 버티는 사람은 없다는 걸 인정하는 일도 회복의 한 부분인지 모른다. 오늘은 강해지는 것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조용히 배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