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겉으로 보기엔 무난한 하루였다. 예약은 촘촘했지만 평소처럼 설명하고 기록하고 다음 환자를 맞았다. 점심도 대충 챙겨 먹었고, 같이 일하는 분들과 짧게 웃을 여유도 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뒤 내가 갑자기 울컥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아이가 장난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물소리를 듣고 있는데, 오늘 진료 중 들었던 한 보호자의 말이 떠올랐다. “제가 잘 못 보고 있었던 걸까요?”라는 짧은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은 늘 스스로를 먼저 탓하게 된다. 나도 아이에게, 환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늘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병원에서는 감정을 잠시 접어둘 수 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해야 할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집은 다르다. 집에 돌아오면 눌러 둔 감정이 뒤늦게 문을 두드린다. 다행히 아이가 뒤에서 나를 안으며 “엄마 뭐 해?” 하고 묻는 바람에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늘 강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도 결국 일상 안에 있다는 걸 오늘 저녁에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