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부터 일정이 조용히 밀렸다. 한 분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다음 순서도 조금씩 늦어지고, 그 사이에 메모할 내용이 늘어나면 마음도 덩달아 촘촘해진다. 병원에서는 늘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퇴근 무렵이 되면 몸이 먼저 솔직해진다. 어깨는 무겁고, 다리는 늦게 반응하고, 냉장고 앞에 섰을 때는 저녁 메뉴를 생각할 힘조차 얇아져 있었다.
남아 있는 재료는 달걀과 쪽파, 어젯밤 끓여 둔 국 정도였다. 예전 같으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을 것이다. 아이에게 더 잘 차려 주고 싶고, 오늘 하루가 바빴다는 이유로 식탁까지 성의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안다. 집밥의 온도는 반찬 수보다 내 손의 속도에서 더 많이 정해진다는 걸. 달걀을 풀고, 약한 불 위에서 조심히 말아 가며 모양을 잡는 동안 나도 조금씩 저녁 쪽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한 조각을 먹고는 오늘 유난히 폭신하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냥 천천히 만들었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그 말이 하루를 꽤 다정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거창한 식탁은 아니었어도 같이 앉아 밥을 먹고, 하루 끝에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힘이 남아 있었다는 것.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한 날이었다.